아파트 입구에는 비밀번호를 눌러야만 들어갈 수 있는 보안 문이 설치되어 있고, 양쪽에 2세대 밖에 살지 않아 어느 으스스한 영화에서 보는 복도는 볼수 없다. 심적으로 안정되고 너무나 안전한 아파트에서 나는 살고 있다.
8년전 외국에서 유학한 나는 일자리를 얻고 자리를 잡아가던 중이었다. 하지만 시기가 안 맞은 것인지 아니면 너무나 운이 없던 것인지 영주권을 딸 기회를 놓치고 한국으로 어쩔 수 없이 귀국하게 되었다. 영주권의 자격은 해가 갈수록 까다로워져 갔고, 전에 다니던 회사의 부장이 언제 오냐며 묻던 문자도 해가 지날수록 뜸해지더니 이제는 거의 볼 수가 없다.
금방 돌아가서 일상적인 생활을 찾을 거라는 생각은 다시는 돌아 갈수 없다는 절망으로 변해갔고, 그 덕분에 나의 얼굴을 수 척해져만 갔다. 어머니는 나에게 매일마다 용돈을 쥐어 주며 이제 그만 포기하고 한국에서 자리를 잡으라는 말을 하셨다. 하지만 한국에서 고학력의 나이 많이 먹은 남자가 회계 쪽에 취업하기에는 일상적인 통념에서 많이 벗어나 있었고, 봉급과 근무환경에서 차이 때문에 취업의 희망은 점점 흐릿해져 갔다. 결국 난 자의적 또는 타의적으로 은둔형 외톨이가 되어갔다.
일상은 항상 똑같았다. 매일 늦은 아침에 깨어 바깥을 바라보고 있으면,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것을 보았다. 마치 나는 시간이 정지된 방안에 갇혀 있는 거와 같고 타인들만 움직이는 느낌이다. 이게 무료해지다 싶으면, 인터넷에 접속해 될 가망성도 없는 취업 원서를 한 개 또는 두개 올리고 난 뒤 오늘 할일은 다 끝냈다 듯이 미친듯이 인터넷 게임에만 집중했다. 그러다 출출해지면 시간은 저녁 6시로 점프하였다.
공허한 느낌이 든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나 어느새 시간은 내일을 향해 가고 나는 제자리 걸음인 것이다. 그렇게 멍하게 1시간을 있으면 어머니가 일터에서 돌아와 저녁을 해주었다. 아무 말씀 없으셨으나 고학력 실업자인 나를 걱정되는 눈길이 느껴졌고 그러다 내일은 반드시 좋은 일자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 없는 소리만 뇌까린 체 방안으로 들어가 지난날 찬란했던 모습을 페이스북으로 뒤적거리곤 했다. 높은 연봉, 정시 퇴근, 오후는 항상 펍에서 친구들과 즐거운 한때… 지금은 그저 먼지에 묻어가는 빛 바랜 액자처럼 보인다. 그렇게 한참을 보고 난 뒤 누추한 잠자리에 누워 내일을 걱정한 뒤 잠에 들었다.
-6월 14일 화요일-
여느 때와 다름없는 오후이다. 늦은 아침 겸 저녁을 먹고 담배 한 대를 핀 뒤 보지도 않는 티 비를 시청하는 척한다. 초인종이 울렸다. 우리집은 어떻게 된 것인지 초인종 소리가 너무 작아 티 비 소리를 낮추고 듣지 않으면 초인종이 울렸는지도 알 수가 없다.
좋은 아파트 답게 보안 스크린으로 문밖의 사람을 볼 수 있었다. 아주머니 2명이다. 어떻게 들어왔는지 모르겠지만 언제나 2명의 아주머니들이 보안문을 뚫고 들어와 포교 활동을 펼친다. 보안 스크린으로 보면 아주 가관인 게 사람이 안에 있는지 확인하려고 귀를 문 앞에 대어 본다. 나는 이런 습성을 너무 잘 알아 티 비 소리를 낮추고 숨을 죽 인체 그들을 얼굴만 바라본다. 인기척을 알아 채려는 지 문도 두드려 본다. 초인종에 반응을 하지 않으면 그냥 가야 할 텐데 굳이 문을 뚜드려 가만히 안에 누가 있는지 물어본다. 나는 한심하 듯이 쳐다보며 속으로 ‘꺼져라’하고 외치면서 처절하게 인기척을 숨기려 한다. 그들은 내가 안에 있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약간 의심스러운 눈빛을 짓고는 내려간다. 무료한 평일이지만 가끔 이런 seeking and hide 상황이 발생한다. 하지만 이런 때에 이기는 것이 항상 나이다. 견고한 철제 문 뒤에서 인기척을 극도로 죽인 나의 생존 본능에 그들은 당할 수가 없다. 그런 것이다.
잠시간의 두근 거림이 지난 뒤 그들의 존재가 완전히 사라졌음을 안 후 티 비 소리를 키운 뒤 보는 척 만 척 뒤적거리다 시간을 보낸다. 그렇게 하루가 또 지나간다.
-6월 15일 수요일-
비록 빌어먹을 백수이지만 매일마다 어머니가 주는 용돈을 모으다 보면 피자 한판을 사먹을 돈이 된다. 초라하지만 나만의 외식을 호화로운 집안에서 즐길 수가 있는 것이다. 롤 게임을 하는 채널을 틀고 인터넷에 들어가 마치 중요한 결정을 내리려는 간부처럼 피자의 종류 사이즈 음료를 골라 내려간다. 그리고 마치 중요한 사인을 적듯이 결제 버튼을 근엄하게 누른 뒤 할인 쿠폰이 제대로 들어갔는지 한 번 더 확인 뒤 마치 중요한 결제를 끝낸 듯 한숨을 쉬며 소파에 앉는다. 그래 조금 있으면 비싼 피자로 점심을 보낼 수 있는 것이다.
웹사이트에서 30분정도를 기다려야 한다는 보고를 받은 후 담배 한 대를 핀 뒤 창문 밖 전경을 그윽하게 바라보며 피자 배달부의 도착을 기다린다. 여유가 엄청 있는 갑부처럼 피자가 30분안에 도착하지 않는데도 나는 결코 비루한 3류 노동자처럼 화를 내지는 않을 것이다. 얼마 뒤 보안문을 열어 달라는 신호가 온다. 보안 스크린으로 피자 배달부의 우렁찬 ‘피자 배달 왔습니다’라는 보고를 들은 후 신속하게 보안문을 열어준다.
‘앞으로 1분뒤…;
그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도착하기를 기다린다. 인터넷으로 이미 지불을 다했으니 굳이 현금을 확인을 할 필요가 없다. 불필요한 말을 하기 싫어하는 나에게 인터넷 페이 방식은 너무나도 편리하다. 잠시 뒤 잘 들리지 않는 초인종이 울리고 나는 사뿐히 문 앞으로 간 뒤 문을 열고 익숙한 자세로 피자와 음료를 받아들인다. 그렇게 잠시간의 미팅이 끝나고 나의 축제가 시작되었다. 주문을 넣을 때 엑스트라 타바스코 소스를 주었는지 확인 뒤 2개의 타바스코 소스를 골고루 피자 위에 뿌려준다. 익숙하고 전문적인 손놀림으로 피클의 포장 지를 딴 뒤 피클 한입으로 에피타이저를 만족시킨다. 그 뒤 피자를 한 조각 시식하면서 음료를 한껏 들이켠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한다. 완벽한 하루이다.
피자의 치즈와 새콤한 피클 그리고 톡톡 쏘는 콜라를 만끽한 뒤 몇 조각은 우리의 생계를 위해 애쓰고 있는 어머니를 위해 남겨둔다. 그리고 이런 나눔을 은근히 뿌듯해하며 얼른 어머니가 돌아와 자신을 칭찬해 줄 것을 기대한다.
-6월 16일 목요일-
우울하다. 지원했던 면접서류가 서류전형에서 떨어졌다. 나의 고스펙 영어실력은 아무 상관도 없다. 나이가 30대 후반이다 보니 매번 경력직 뽑는 곳에 지원을 하지만 항상 떨어진다. 외국기업에서 일을 한 나의 경험은 여기서는 그저 휴지 조각일 뿐이다. 능력, 언어실력 모두 최상위급이다. 하지만 나이가 30대 중반을 들어섰고 한국에서의 경력이 없다면 그저 잉여일 뿐이다. 매일 같이 빼먹지 않고 입사원서를 적었지만 오늘은 적고 싶지 않았다. 힘들게 입사원서를 적었 어도 서류 전형에서 단 몇 줄로 거절의사를 들으면 모든 의욕이 사라지고 죽고 싶다. 그렇다.
잠시간 우울했던 기분을 풀어보고자 전에 외국에서 사겼었던 여자의 페이스북에 들어가본다. 귀국하기 전에는 반드시 돌아간다고 하였는데 몇 년이 지난 뒤에는 그저 공허한 약속이었을 뿐이었다. 그녀의 상태를 보니 뭔가 바뀌어 있다. 분명 싱글이었는데 약혼이라고 떠있다. 그리고 그녀에게 프로포즈 하는 남자의 사진이 보인다. 그렇다. 그녀는 프로포즈를 받은 거다. 우울했던 기분이 이제는 그저 슬픈 감정이다. 친구, 직장, 미래, 여자친구 모든 것을 잃은 나에게 세상이 남긴 것은 그저 이 안락한 집 안 뿐이다.
-6월 17일 금요일-
여느 때와 다름없이 어머니가 만들어 주신 반찬과 국을 먹고 난 뒤 인스턴트 커피로 후식을 즐기고 있다.
‘띵동’ 벨이 울린다.
보안 스크린으로 보니 왠 남자가 서있다. 뭘 까?
난 피자를 시킨 적도 없고 부른 적도 없는데…
또다시 필살기인 인기척 숨기기로 그 남자가 떠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왠지 포교를 하러 왔던 아주머니와는 다르다. 비밀번호를 누르기 시작한다. 뭘까? 갑자기 공포심이 든다. 삑삑 삑 눌러도 성역인 문은 결코 열리지 않는다.
그런데 이 남자가 전기 스파크를 내는 기구를 꺼내더니 문에다가 따 딱 튀긴다. 뭔가 문이 열린 느낌이다. 위기다!
나는 스피커폰에 다가 우렁차게 외친다.
‘누구세요?!’
순간 청녕의 눈이 크게 떠진다.
‘누구냐고요?’
더 크게 소리치자 그는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계단으로 내려간다. 감히 나의 성역을 뚫으려 하다니 분노가 차오른다. 바로 현관으로 달려간 뒤 문을 열어본다. 쓰윽하고 열린다. 1초만 늦었 어도 이 남자는 나의 현관으로 들어왔을 것이고 그와 나는 피 튀기는 혈투를 치렀을 것이다. 더욱더 분노에 찬 나는 인터폰을 든 뒤 경비실에 연락을 한다. 어떤 남자가 문을 열고 들어오려고 했다고. 경비실 직원은 알겠다며 인터폰을 끊었고, 나는 경찰에 신고를 한다. 감히 내 평온을 깨려고 하는 놈을 결코 용서할 수 없다.
경비실과 경찰에 신고를 하고 난 뒤 문 앞에 붙여져 있는 도어락 회사에 전화를 하였다. 그러니 곧 도어락을 바꿔 주겠다는 말을 들었다.
잠시 뒤 경비실 직원과 경찰이 왔고 나는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있었다. 조금 뒤 도어락 기사가 왔고 그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도어락의 건전지가 다해서 열린거 아니냐는 말을 하였다. 황당했던 나는 그 남자가 비밀번호를 눌렀고 전자 충격기 같은 걸로 튀겼다고 하자. 도어락 기사는 여전히 못 믿겠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건전지가 다해서 문이 안 닫혔을 수도 있다는 말을 하였다. 그러자 경찰관도 거기에 설득당해 건전지가 다 되어 문이 열린것일수도 있으니 걱정을 하지 말라는 말을 하였고 경비실 직원도 밑에서 그 남자를 잡아 물어보았지만 문을 착각해 비밀번호를 눌렸다는 되도 안되는 말을 듣고 보내주었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그냥 보낸 경비실 직원에게도 빡 쳤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경찰관과 그걸 부추기는 도어락 기사도 열 받게 만들었다. 도어락을 교체하고 모두가 돌아 간 뒤 난 뭔가 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떻게 그렇게 빨리 도어락을 교체하러 왔을까? 그리고 왜 문을 따려고 하였던 놈을 옹호하였을까? 한패인가...?
엄청나게 더러운 기분으로 저녁을 먹으면서 뉴스를 보고 있으니 최근 소형 전기 충격기와 같은 걸로 구형 도어락을 열고 빈집 털이를 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렇다. 난 빈집 털이 새끼를 막은 거다.
그 날밤 12시 잠이 오질 않았다. 한패 같은 녀석이 문을 교체하였기에 언제든 다시 따고 들어오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쉽게 가시질 않았다. 현관은 보안문과 도어락은 작동하지 않았다. 완벽하게 세상과 나를 막고 있어준다고 했던 문이 사실은 그저 열린 것이었다. 만약 내가 기지를 발휘하지 않아 숨죽인 체 숨어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놈과 칼부림을 벌렸을까? 으스스해지는 순간이었다.
그 뒤로 몇일 수호신처럼 집안에 붙어 있는 집에 어는 누구도 초인종을 누르지 않고 있다. 하지만 문을 볼때마다 그놈의 전기 충격기의 ‘딸깍’소리가 들리지 않을까 무서운 마음이 든다.
끝